2023.01.31 수요일

43호 뉴스레터

장면1. 검은색

 유미코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둠 속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햇빛이 비치는 공간을 기피합니다. 유미코가 즐겨 입는 옷도 검은색 옷이죠. 이는 유미코의 내면에 슬픔이 항상 함께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한 걸음만 옮기면 따스한 햇볕으로 나올 수 있건만 유미코는 음지와 양지의 경계 앞에서 멈춰섭니다. 그늘과 햇빛이 대비되는 장면은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온 가족이 즐겁게 수박을 먹는 순간에도, 유미코는 반쯤 그림자에 걸쳐 있죠.

장면2. 보이지 않는 슬픔

 <환상의 빛>의 많은 장면이 *익스트림 롱샷과 **픽스샷으로 촬영되었습니다. 감독은 계속해서 인물들을 한 발 떨어진 곳에 가만히 서서 조망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배우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배우의 얼굴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배우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는 컷이 거의 없죠. 심지어 영화의 감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장면에서도 실루엣으로만 등장인물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고레에다 감독은 슬픔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내면의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익스트림 롱샷: 등장인물을 매우 작게 찍는, 배경을 비추는 샷

**픽스샷: 카메라를 고정한 채 촬영하는 샷

장면3. 남겨진 것들

 <환상의 빛>에는 유독 등장인물의 뒷모습과 인물들이 사라진 뒤의 풍경이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전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배우들이 사라진 뒤의 풍경을 왜 계속 영화에 담았을까요? 그건, <환상의 빛>이 중요한 것들이 떠나가 버린 뒤의 모습, 남겨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다정하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새 남편의 전 아내의 이야기 등의 이야기는 비밀로 남겨둡니다. 굳이 시간으로 덮은 슬픔을 들춰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남겨진 인물들의 삶에 대해 조용히 그리고 섬세하게 이야기합니다.

✍에디터

생활인

멀티플렉스보다는 작은 영화관을, 블록버스보다는 예술영화를 선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