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기로 다짐했어

2024. 4. 23.

2023.04.24 수요일

49호 뉴스레터

<백만엔걸 스즈코>

드라마 | 일본 | 2008년 | 121분

취직을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100만엔이 모이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려는 여자의 이야기. 독립을 꿈꾸던 스즈코는 룸메이트 타케시와 다툼 끝에 결국 전과자가 된다. 출소 후, 그녀는 백만엔을 모으면 집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전과자인걸 아무도 모르는 먼 곳에서 다시 백만엔을 모으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바닷가 마을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즈코는 계획대로 백만엔이 모이자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다음으로 그녀가 도착한 곳은 산골의 복숭아 과수원. 그곳에서 생활에 점차 적응해갈 무렵,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스즈코에게 마을 홍보를 위해 ‘복숭아 아가씨’를 해줄 것을 제안한다. 곤란해하던 그녀는 결국 모두의 앞에서 전과가 있음을 고백하고 급히 마을을 떠난다.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도시로 온 스즈코는 꽃집에서 일하며 대학생 나카지마를 만나게 된다. 친절하고 상냥하며, 무엇보다 스즈코의 과거를 알고도 개의치 않는 나카지마와 스즈코는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어느덧 통장의 잔고는 계획했던 백만엔에 거의 가까워지는데…

source: 네이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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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적인 해석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한 적 없어요?”

스즈코의 질문에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수도 없이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12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고향이 지겨워서, 대학 시절에는 생각 없이 저지른 실수들을 잊고 싶어서, 취업 준비할 때는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서, 그리고 마침내 직장인이 된 지금은 다시 자유롭고 싶어져서. 나는 항상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스즈코는 어처구니없게 전과자가 된다. 그 과정은 너무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 하늘의 누군가가 스즈코가 집을 떠나도록 미리 설계라도 한 듯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자신의 전과를 숨기고 싶어서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전과가 생기기 전부터 항상 떠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전과는 무리해서 자취를 시작했다가 생겼으니까.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인가요?”

“아니… 오히려 찾고 싶지 않아요.”

100만엔을 모을 때마다 떠나기로 한 스즈코는 바다로, 산으로 또다시 도시로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새로운 곳에는 그녀가 범죄자라고 차별하는 사람도 없고, 낯선 곳의 새로운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누군가 치근덕거리거나 불편한 일이 생길 때쯤이면 100만엔이 거의 다 모였을 때가 되었다. 다시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자유로웠다. 두근거리는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스즈코는 정말 자유로울까?

나는 20대 초반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종 영화제에서 때론 자원활동가로 때로는 스태프로 활동했다. 서울, 파주, 부천, 무주, 평창, 부산 등 전국을 누볐다. 때때로 전에 같이 활동했던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새로운 영화제를 시작할 때면 대부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생활이 불안해졌다. 이제 나는 안정감을 원했다.

취직만 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도 자립하고, 자존감도 상승하고, 안정감도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광고대행사에 취직을 한 지금의 내 생활은 어떨까? 매일 자책하고, 또다시 실수를 저지를까 불안에 떨고 있다. 자유롭게 시간을 썼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절실히 떠나고 싶어 하고 있다.

“누나에게. 잘 지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스즈코의 남동생에서 편지가 왔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동생은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괴롭히는 아이들이 없는 학교로 가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편지에 담긴 내용은 달랐다. 편지에는 ‘학교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마주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명문 중학교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타인은 지옥이라지만, 내 안에도 지옥이 있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수치스러운 나, 혐오스러운 나, 잊고 싶은 나, 짜증 나는 나, 화가 나는 나, 후회되는 나…. 수도 없는 지옥이 펼쳐진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나의 치부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 마음은 곧 ‘완벽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어디에나 ‘부끄러운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은 없다. ‘나’는 항상 ‘부끄러운 나’를 기억한다.

자유로워 보였던 유목 생활은 사실 도망칠 수 없는 ‘나’로부터의 끝없는 도주였다. 탈옥수처럼 끊임없는 도피 생활을 하지만, 잔인하게 죄어오는 끈질긴 추격자는 ‘나’였던 셈이다. 이제는 잠시 멈춰 탈옥수인 ‘나’와 추격자인 ‘나’를 마주보기로 했다. 이제 나의 눈에는 잦은 실수에 자책하는 나 대신 조금 더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